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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6-06-17 09:41 작성자신영란 | 대전시,세종시,청주시,공주시,부여시본부 댓글 3건 조회 3,835회6월- 忠 에 대한 창의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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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헌과 칠백의총--
(소재지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의총리)
임진왜란은 우리 민족사에서 큰 상처이지만 온 백성이 힘을 모아 충절을 드높이고 국난을 극복한 자랑스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7백명의 의병과 함께 끝까지 왜적에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 조헌선생도 드높은 봉우리 가운데 한 분입니다.
평소 조헌은 나라에 충성하는 마음이 남달랐다고 합니다. 많은 그의 문하생에게 호국사상이 선비정신의 한가지임을 역설하였습니다. 임금(선조)께 애국충절의 마음이 가득한 상소문을 수 차례나 올렸으며 간곡한 태도로 바른 말을 자주 아뢰었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바로 전 해, 대궐 앞에 거적을 깔고 꿇어 앉아 도끼를 옆에 놓은 채 상소한 그의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는 곧 왜적이 쳐들어 올 것이니 미리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리면서, 만일 상소가 잘못되었다면 가져간 도끼로 자신의 목을 쳐 달라고 하며 며칠동안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소도 헛되이 임진왜란은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왜적의 손아귀에 서울이 넘어 갔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옥천에서 제자들을 중심으로 일천여 명의 의병을 모아 용감히 싸웠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왜적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금산에서 치열한 항쟁을 계속하다가 7백 여명의 승병과 의사와 함께 그는 장렬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조헌과 칠백의총”의 내력입니다.
조헌은 평소에는 임금을 바른 길로 이끄는 좋은 보좌역을 해낸 충신이요, 국난을 당해서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열사로서 참다운 선비였습니다.
퇴계 이황 선생도 다음과 같이 그의 충직한 태도를 칭송했답니다. “몇 번이나 대궐 난간을 꺽고 몇 번이나 임금의 옷자락을 끌어 당겼던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직함이여! ”
댓글목록
김진영님의 댓글
김진영 | 서울강서구·부천원미구본부 작성일
신영란 선생님 반갑습니다.^^
요즘 큰아이 사회 공부땜시 역사를 다시금 접하고 있습니다.
신채호선생님이 그러셨나요?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한자속독의 인성교육!!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살찌우는 꼭 필요한 수업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박태원님의 댓글
박태원 | 대전시,세종시,청주시,공주시,부여시본부 작성일
신영란회장님 멋진 글 잘 활용하겠습니다.
옥천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몰랐군요. 군서초 어린이들에게 꼭 알리겠습니다.
창의인성자료로 손색이 없습니다.
항상 본부 발전을 위해 솔선수범 앞장서시는 모습 너무 감사드립니다.
신영란선생님 화이팅!!!
최철순님의 댓글
최철순 | 대전시,세종시,청주시,공주시,부여시본부 작성일
신영란회장님!안녕하세요?
요즈음같이 어수선한 때에 조헌선생님의 우국충정의 글을 올려주신 회장님의
선견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금과옥조와 같은 글이 될 것입니다.
신영란선생님 승승장구 하세요!!!